Carla Bruni, new First Lady of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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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갓 결혼한 칼라 브루니가 영국 국빈 방문을 하면서 갖가지 화제를 낳고 있다.

 

첫번째 뉴스는 15년전 브루니가 슈퍼모델이었던 시절 Michel Comte라는 유명한 사진가가 찍었던 누드 사진이 다음달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매물로 나왔다는 것.

 

Carla Bruni in naked auction row

http://www.metro.co.uk/news/article.html?in_article_id=126554&in_page_id=34

 

"For the Queen's sake, let's hope the dress code at Windsor Castle is a little bit stricter than this – otherwise Her Majesty could be seeing a lot more of Carla Bruni than expected."

 

판매부수를 위해서는 왕실 인사들을 표적으로 삼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영국 타블로이드지들은 즉시 브루니의 누드 사진과 관련 기사를 톱으로 때렸다(왜 우리나라판 메트로에는 이런 사진이 안 올라올까?).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브루니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Carla Bruni charms UK with fashion diplomacy

http://www.telegraph.co.uk/news/main.jhtml?xml=/news/2008/03/28/wcarla128.xml

 

우선 전직 슈퍼모델이자 팝 가수답게 타고난 미모(수술 좀 했다고 해서 다 이렇게 나올까?)와 화려한 패션, 그리고 기품있는 언동으로 영국 왕실과 대중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영국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브루니를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여사,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비교하고 있다.

 

Is Carla Bruni the new Princess Diana?

http://www.telegraph.co.uk/portal/main.jhtml?xml=/portal/2008/03/27/ftbruni127.xml

 

덕분에 영국 여론의 관심은 정작 사르코지보다 브루니 쪽에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사르코지 입장에서 그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Carla Bruni gives summit the kiss-of-life

http://www.telegraph.co.uk/news/main.jhtml?xml=/news/2008/03/27/wsarko627.xml

 

결국 정상회담이라는 것도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인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도 더 잘 되는 법이다. 원래 영불 관계가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브루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감안할 때, 사르코지로서는 빠듯한 공식 일정 이외에 템즈강에서 둘이 보트에 타 데이트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사실 브루니의 인생사를 돌이켜 보면 프랑스 대통령의 영부인이 된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위키 검색에 따르면, 브루니는 이탈리아 타이어 재벌 집안에서 태어나 5살 때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왔다가 나중에는 스위스의 기숙사 학교에 보내졌고 대학에서 미술과 건축학을 전공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유럽 상류층 인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브루니는 19살 때 대학을 때려치우고 모델로 나서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고, 수많은 남성들과 염문을 뿌렸다.

 

브루니가 관계를 가졌던 남자 중 특히 유명한 사람을 꼽자면 믹 재거, 에릭 클랩턴, 도날드 트럼프(뉴욕의 부동산 재벌)가 있었고 사회당 출신의 전 프랑스 수상인 로랑 파비우스와도 한동안 사귀기도 하였다.

 

브루니의 결혼관 또한 유럽인답게 매우 쿨(?)했다:

 

"I am monogamous from time to time, but I prefer polygamy."

 

Carla Bruni: An unlikely First Lady?

http://www.telegraph.co.uk/news/main.jhtml?xml=/news/2008/01/11/wsarkozy111.xml

 

그런 브루니가 사르코지와의 결혼에 골인하여 프랑스의 영부인이 되리라 누가 예상했을까?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매우 현대적(?)인 스토리라 할 있다.

 

우선 브루니의 현대적 연애관, 결혼관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 구제(?)해주기를 기대하는 옛 동화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유복한 가정에서 편하게 자란 것을 보면 성장 환경은 신데렐라보다는 계모의 두 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르코지 또한 "백마 탄 왕자님"과는 거리가 멀다. 브루니 이전에 이미 두 차례의 결혼 및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특히 두번째 부인이었던 세실리아와의 결혼생활 중에는 거의 대놓고 서로가 바람을 피웠던 것으로 유명하다.

 

세실리아 또한 이 이야기에서 신데렐라(?)로 볼 수 있겠지만 영부인 생활이 싫다고 남편과 이혼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모습은 역시 과거였다면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화에서 늘 말미에 나오는 "happily ever after"에 구애받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루니 스토리에 극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르코지가 세실리와 이혼한 것은 작년 10월. 그가 디즈니랜드에서 브루니와 연애하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12월.

 

일국의 대통령이 이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연애질이냐며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만도 하겠지만 대통령도 사람인데 어쩌라구?

 

물론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티칸에서 교황과 회담을 중에도 브루니와 문자 보내느라 한눈 파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관대(?)한 프랑스 사람들이지만 사르코지의 요란한 애정행각에 대해서는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

 

이는 사르코지에 대한 인기 추락을 초래하였고 이번 달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주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물론 진짜 패인은 사르코지의 인기없는 정책 때문인 듯 하지만..).

 

어쨌든간에 둘은 지난 2월 2일 엘리제궁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브루니의 경력과 결혼관을 생각할 때, 과연 브루니가 영부인 생활에 잘 적응할지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였지만 일단 이번 영국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그러한 걱정은 많이 줄어들 것 같다.

 

영부인으로서의 자질 문제에서도 상류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약간 귀족스러운 기품을 타고난 것 같아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둘의 결혼생활이 앞으로 계속 순탄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둘이 사귀기 시작한지 아직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연애 호르몬 분비는 1년이 지나면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당장 둘의 결혼생활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서로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고, 브루니는 프랑스 영부인으로서의 유명세 덕분에 짭짤한 수익도 올리고 있으니..

 

Carla Bruni 'cashing in' on Queen visit

http://www.telegraph.co.uk/news/main.jhtml?xml=/news/2008/03/26/wsarko426.xml

 

재클린 케네디, 다이애나 빈이 생전에 천부적인 자기 PR 능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브루니도 뭇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돈까지 벌고 있으니 한 걸음 더 진화했다고나 할까?

 

*Photos are from the first four articles respectivley.

by ethan | 2008/03/31 23:51 | 트랙백 | 덧글(0)

정치인의 아내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하는 기나긴 민주당 경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종종 미국 뉴스를 보는 요즘(힐러리는 공화당 엑스맨, 아니 엑스워먼인 듯..)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바로 스피처 뉴욕 주지사의 충격적인 콜걸 스캔들과 사임 소식이다.

 

검사 출신으로 마피아 보스, 월가의 화이트칼러 범죄자들의 소탕에 앞장서며 명성을 떨치던 그는 덕분에 주지사까지 된 그가 졸지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것이다(덕분에 이 스캔들의 여자 주연인 애쉴리 듀프레는 페이스북 방문자수는 폭발했대나?).

 

Felled by Scandal, Spitzer Says Focus Is on His Family

http://www.nytimes.com/2008/03/13/nyregion/13spitzer.html

 

흥미로운 것은 섹스 스캔들이 터진 후의 기자회견에서 부인이 옆에 서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는 스피처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 남자 화장실에서 남자를 꼬시려다가 잠복 근무 중이던 경찰에 잡혀 동성애자임이 드러난 레리 크레이그 연방상원 의원, 2004년 보좌관으로 임명했던 (남자) 애인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바람에 역시 게이임이 드러난 짐 맥그리비 뉴저지 주지사 모두 기자회견에서 부인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이들 부인은 어떤 심경일까?

 

Why Do the Wives Stand There, Next to Their Men?

http://www.nytimes.com/2008/03/12/nyregion/12wife.html

 

다음 글은 2004년 맥그리비 주지사의 커밍아웃 기자회견에 모습을 보였던 그의 부인이 쓴 기고문이다.

 

Stand by Yourself

http://www.nytimes.com/2008/03/12/opinion/12mcgreevey.html

 

글의 요지는 기자회견에 불려나간 스피처 전 주지사의 부인을 동정하며, 자신의 경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힘없이 외도한 남편의 기자회견에 따라 나갔으며 자신은 딸의 안위 밖에 생각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맥그리비 부부에 관한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Former New Jersey Gov. Jim McGreevey: My Wife And I Engaged In Threesomes With Young Aide

http://www.huffingtonpost.com/2008/03/17/former-new-jersey-gov-ji_n_91978.html

 

맥그리비의 전직 운전수에 따르면 그와 미스터 앤 미세스 맥그리비는 한동안 정기적으로 쓰리섬을 즐겨왔다고(I don't mean golf).. ;;;

 

현재 맥그리비 부부는 별거한 상태로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이고 딸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부인은 당연히 쓰리섬 주장을 부인하고 있지만 글쎄 과연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물론 정치인 남편을 살리기 위해 진정한 열녀(?)의 모습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힐러리 클린턴이 아닐까?

 

당시 힐러리는 빌의 정치생명을 살리기 위해 르윈스키 스캔들을 거대한 우익 음모(vast right-wing conspiracy)라 규정지으며 오히려 탄핵운동을 전개하던 공화당을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그때만 해도 나와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힐러리가 체면상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이며 자존심이 있는 여자라면 빌이 퇴임하자 마자 바로 이혼할 것이라고 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러한 우리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깼다. 오히려 2000년 뉴욕주 출신 연방상원 선거에 나서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만약 그때 힐러리가 빌과의 결별을 선언했다면? 빌뿐만 아니라 힐러리의 정치생명도 끝났을 것이다.

 

힐러리가 바보가 아닌 이상 클린턴의 무수한 외도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을 차지 않은 것은 백악관이라는 자리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있을까?

 

덕분에 힐러리는 이미 8년간 사실상 "부통령" 역할을 해왔고(클린턴 부부와 고어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이번에는 영부인으로서의 브랜드를 활용하여 대통령직까지 차지함으로써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려는 것이다(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빌이 "부통령"이 되지 않을까?).

 

그러고서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며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뽑히도록 지지해달라고 주장하니 어이가 없다. 레이디 맥베스를 뺨친다고나 할까?

 

대통령이 되고 싶으면 영국의 대처 수상이나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제 힘으로 정치활동을 하면 될 것이지 현대사회에서 남편 후광으로 정치하는 게 페미니스트인가?

 

아니면 한술 더 떠서 맥그리비 부인 정도인 거 아닐까?

 

작년 신정아 스캔들이 터진 이후, 변양균 씨가 구속되었을 때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마땅히 올릴 사진도 없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보다 자존심이 더 있다고 해야 할까? 더 냉정하다고 해야할까? :P

 

* 애슐리 듀프레(일명 Kristen)의 사진은 본인의 페이스북으로부터..

 

스피처 주지사 사진 출처는 첫번째 뉴욕타임즈 기사.

 

맥그리비 주지사, 빌&힐러리 사진의 출처는 다음 기사 사이트:

 

What sex scandals say about politics

http://seattletimes.nwsource.com/html/politics/2003992771_curtis04m.html

 

Hillary learned Lewinsky truth from aide

http://news.bbc.co.uk/1/hi/world/americas/924619.stm

 

by ethan | 2008/03/23 00:47 | 트랙백 | 덧글(0)

슬픈 티베트

 


1951년 이래 중국의 무단통치를 받아온 티베트가 다시 뉴스에 나오고 있다.

 

수도 라사를 비롯하여 티베트 각지에서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중국 당국은 군을 투입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Tibetans Clash With Chinese Police in Second City

http://www.nytimes.com/2008/03/16/world/asia/16tibet.html

 

중국이 올해 여름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여론의 눈치를 보며 지나친(?) 무력진압을 피할 것이라는 기대 하에 티베트인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망명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중국 내의 자치이다. 지금과 같이 티베트 문화와 불교를 억압하고 경제개발을 내걸고 한족의 이주를 통한 식민정책을 펴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전혀 이를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 마치 일본이 군대성노예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시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듯이 역시 고령의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1933년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산중의 낙원 샹그리라(Shangri-La)로 그려졌던 티베트는 어쩌다가 이런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티베트가 언제나 평화의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과거 토번이라 불리던 티베트는 한때 중국 장안을 점령할 정도로 막강한 민족이었다.

 

이후 티베트는 원나라와 청나라에 의해 정복되었다. 그러다가 서구 열강의 진출과 농민반란 등으로 혼미를 거듭한 청조 말부터 티베트는 사실상의 독립을 되찾게 되었다.

 

티베트의 현대사는 망명 티베트 학자인 Tsering Shakya의 "The Dragon in the Land of Snows: A History of Modern Tibet Since 1947"을 읽으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티베트가 중국의 통치를 받게 된 데는 외교의 실패 내지는 부재가 있었다.

 

사실 이 시기에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인도를 식민통치하던 영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티베트를 중국과의 사이에서 완충지대로 보았던 것이다.

 

만약 티베트의 지도자들이 세계 정세에 밝았다면 바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계 각국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국제연맹, 국제연합 등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독립을 확고히 인정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는 구소련의 후원 하에 1921년 독립을 성취한 몽골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산속의 고립된 나라였던 티베트의 지도자들은 국제정세에 어두워서 독립을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948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티베트는 중국의 군사위협에 직접 노출되게 되었다. 그리고 1949년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은 전세계의 이목이 한국 전쟁에 집중되어 있던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티베트인들은 1959년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으나 결국 압도적 군사우위를 누리던 중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후 달라이 라마는 중국군을 피해 인도의 다름살라로 옮겨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중국은 티베트의 불교사원들을 파괴하고 독립운동을 강경진압하는 등 무단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초기에 티베트 반란 세력을 지원하였으나 닉슨 행정부 시기부터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면서 지원을 끊어 버렸다.

 

이렇듯 티베트가 중국에 강점된 것은 과거 지도자들의 외교력 부재에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재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망있는 외교관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자유를 향한 티베트의 열망은 세계의 양식있는 지성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비폭력 평화주의자인 달라이 라마는 압제자 중국을 상대로도 폭력을 사용하지 말도록 티베트인들을 설득하며, 중국 정부를 상대로도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실질적 자치를 요구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서도 개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개최국에 부합되게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를 보고 있으면 옛날 영화 "미션(The Mission)"에서 나왔던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즈 분)가 떠오른다. 스페인 및 포르투갈 당국으로부터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지키려는 예수회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을 고수하는 반면 멘도자(로버트 드니로 분)는 무력저항을 고수한다.

 

그러나 결국 둘 다 목숨을 잃고 과라니족 미션은 침략군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지금 가브리엘 신부가 인정하기를 거부했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Might is right? Can the Dalai Lama prove it wrong?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달라이 라마만의 몫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이는 우리 세계가 힘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즉, 압도적 무력상 우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티베트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중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게 곳 해결의 실마리가 아닐까? 그리고 만약 티베트가 계속 억압받고 달라이 라마가 평화적 해결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티베트만의 패배, 실패가 아닐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티베트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매우 의심스러운 역사논리를 동원하기 일쑤이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원나라, 청나라가 티베트를 통치했으니 이를 승계한 중국은 당연히 티베트를 통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12년 중화민국이 탄생한 이래 당면한 딜레마이다. 청조 말기의 중국 혁명가들은 이민족인 만주족 왕조를 몰아내고 한족의 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막상 신해혁명이 성공하여 중화민국이 수립되고 보니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 한족이 아닌 민족들이 사는 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계속 "한족의 나라" 운운하다가는 당장 청나라 시대 영토의 반이 날아갈 판국이었다. 자연히 중화민국의 지도자들은 청조가 그랬듯이 황급히 다민족 국가를 간판으로 내세웠고 이는 공산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청조가 마지막 순간까지 만주족이 지배하는 나라였듯이(흔히들 청조 말기에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Mark Elliott의 "The Manchu Way: The Eight Banners and Ethnic Identity in Late Imperial China"를 보면 만주족이 8기병, 거주지 분리 정책 등을 통해 한족과의 완전한 동화를 제도적으로 막으며 지배체제를 유지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한족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청조 시대에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만주족이 같은 변방 이민족이었기 때문에 위구르, 몽골족 등이 청조에 복종했을 것이라는 가정은 무수한 정복전쟁과 반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이 아니다) 2차 대전 이후 무력을 통해 확립된 한족 정복자들의 통치체제를 인정하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그럼에도 몽골족, 만주족이 다 중국의 일부이므로 원나라, 청나라의 역사를 다 중국의 역사로 봐야 하고 따라서 티베트 등의 통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중국의 역사관은 꽤나 황당하다.

 

그렇다면 혹자의 말대로 원나라가 정복했던 이라크, 러시아도 중국 땅인가? 태평양 전쟁 중에 중국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던 일본도 중국의 일부로 봐야 하나?

 

문제는 서남공정, 동북공정 등을 앞세워 수십년간 역사 공작을 해온 덕분에 대다수 중국인들이 이러한 중국 정부의 역사논조를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어용이라 불릴 수 밖에 없는 중국의 학자들은 이러한 정부 논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는 또한 자신들이 티베트 인민을 불교 승려들이 정점에 있는 봉건 착취 제도에서 "해방"시켰다는 주장을 편다. 중국판 인도적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인가?

 

그러나 전근대에 그러한 봉건제도는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시대에 불교 사찰의 지나친 권력화는 문제가 되었고 결국 조선조에서 그에 대한 극단적 반동으로 억불숭유 정책을 채택한 전례가 있다.

 

그런 논리라면 솔직히 중국도 옛날부터 인민이 지배하는 자유의 나라였던 것은 아니지 않나? 황건적의 난, 이자성의 반란, 태평천국 난 등 농민 봉기가 끊이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하나?

 

1949년 중국 본토를 장악한 공산당도 그 이후 단 한번도 민주선거를 실시한 바 없다. 대약진 운동, 문화혁명 등도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 벌어진 대표적인 실정이 아닌가?

 

게다가 티베트 인민이 중국에 의한 "해방"을 반겼다면 왜 반중국, 반한족 시위를 벌이는 것일까? 왜 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과거 폴란드를 분할한 오스트리아가 민족주의적인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농노들을 해방시켜 환영을 받았지만 계급 구분이 와해되면서 전국민적 민족주의가 발흥하여 성공적 독립운동으로 귀결된 것을 중국 지배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중국의 논리는 일제 통치가 한국을 경제적으로 발전시켰으니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과 뭐가 다른가? 중국이 더 잘 살게 된다면 외세 통치를 달게 받겠는가?

 

수많은 이민족의 통치와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을 경험했던 중국인들은 왜 남의 슬픔은 모르는 것일까? 영화 "황비홍"에서 주인공이 서구 열강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 유지에 골몰하는 것을 두고 혀를 차던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나?

 

결국 아래 기사에서 확인되듯이 사람은 빵만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민족적, 문화적 자존심 등이 충족되어야 하는 법이다.

 

Letter from China: Separating fact from image on Tibet
 
달라이 라마가 없어지면 중국의 바램대로 티베트인들은 조용해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폭력을 주창하던 달라이 라마가 사라지면 티베트인들은 중국을 상대로 한 무력항쟁에 적극 나서지 않을까?
 
티베트 같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이 벌어진다면? 그러한 무력봉기가 위구르 일대 등으로까지 확산된다면? 양측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까? 중국판 체첸, 팔레스타인이 되지 않을까?
 
이런 끔찍한 가상 시나리오만 봐도 중국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충분한 이유가 아닌가?

 

*사진들은 다 AFP-Getty Images가 출처로 위 뉴욕타임즈 기사를 통해 찾았다.

by ethan | 2008/03/17 03:00 | 트랙백 | 덧글(0)

호주 정부의 사과

2008년 2월 13일은 호주 역사에 이정표로 남을 날이다.

 

이 날 호주 정부는 과거 1970년대까지 한 세기 동안 원주민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원주민 자녀들을 강제로 백인 가정이나 선교사, 고아원이 기르도록 했던 10만 명에 이르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에 사과하였고 같은 날 의회는 동일한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호주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원주민들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피해자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미주 대륙과 마찬가지로 유럽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이 살던 땅을 정복하여 세워진 호주에서 백인 이주사는 곧 원주민 수난사였다.

 

가장 악명높은 사례는 오늘날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관광지 태즈매니아(Tasmania) 섬에서 벌어졌다. 1803년 첫 백인 정착촌이 세워진 이 섬의 원주민들은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백인들의 질병과 학살로 씨를 말려버렸다(많은 이들은 이를 제노사이드라 부른다).

 

다른 호주 원주민들 역시 백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거나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났다.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사람 대접 받을 자격이 없는 "미개인"으로 간주하며 수많은 만행을 자행했다.

 

원주민 아동의 백인 가정에의 강제 입양 정책 역시 이러한 인종주의, "문명화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부모와 생이별한 아이들은 백인 "양부모"로보터 신체적, 성적 학대를 받으며 평생 갈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비슷한 일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지에서도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은 수십 년간 묻혀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1995년 당시 노동당 정부는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하는 인권 및 평등기회 위원회(Human Rights and Equal Opportunity Commission)에 공식조사를 요청하였고 위원회는 1997년 의회에 조사를 종합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Bringing Them Home - Report of the National Inquiry into the Separation of 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Children from Their Families.

http://www.humanrights.gov.au/social_justice/bth_report/index.html

 

보고서는 호주 의회가 원주민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유엔에서 제시한 인권침해 피해자 배상 기준(van Boven Principles)에 따라 배상할 것을 권고하였다.

 

그런데 호주 인권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던 중이던 1996년 정권이 자유당으로 교체되었는데 이후 11년간 집권한 보수성향인 하워드 총리는 옛 과오에 대해 현세대의 호주인들이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며 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1999년 유감을 표하는 결의안을 내는 데 그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의회들은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1997년 뉴사우스웨일즈 및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를 시작으로 사과 결의안을 채택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에는 자유당이 집권하고 있는 주정부도 있었다.

 

한편 피해자들 역시 연방 법원 및 주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였고 작년 8월에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대법원은 주정부에 525만 불의 배상을 명령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TREVORROW v STATE OF SOUTH AUSTRALIA (No 5) [2007] SASC 285 (1 August 2007)

http://austlii.law.uts.edu.au/au/cases/sa/SASC/2007/285.html

 

Stolen generation payout

http://www.theage.com.au/news/national/stolen-generation-payout/2007/08/01/1185647978562.html

 

2001년 연방법원에서 제기된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청구를 기각하면서도 이는 당사건의 증거 부족에 인한 것으로 다른 사건에서는 배상청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밝혔다.

 

Cubillo v Commonwealth of Australia (includes summary) [2001] FCA 1213 (31 August 2001)

http://www.austlii.edu.au/au/cases/cth/federal_ct/2001/1213.html

 

국제적으로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기간 중 호주 정부는 이 문제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으며 유엔 역시 호주 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요구하였다.

 

한편 작년 11월 총선에서 압승한 노동당은 공식사과를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그리고 케빈 러드 총리는 2월 13일 연방의회에서 사과 결의를 제출하고 그 당위성을 설명하는 연설을 하였다.

 

Australia Says Sorry to Stolen Generation 2008

http://youtube.com/watch?v=wuSDiw4IvPs

 

Australia Says Sorry to Stolen Generation 2008- Part 2

http://youtube.com/watch?v=SzodDAaPdJw

 

Australia Says Sorry to Stolen Generation 2008- Part 3

http://youtube.com/watch?v=ZzXTTM5FAU0

 

연설문 전문:

http://www.aph.gov.au/house/Rudd_Speech.pdf

 

 

연설 하이라이트:

Kevin Rudd apologises to the Aboriginal Stolen Generation

http://youtube.com/watch?v=uERSO_9M75k

 

 

연설을 보고 있자면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를 하는 데 있어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러드 총리는 중국어에 능통한 외교관 출신인데, 하워드 총리가 이끄는 우파 자유당 정권을 11년만에 종식시킨 노동당 당수에 걸맞는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사과 결의안을 집권 이후 처음으로 개원한 의회의 첫 회기의 첫 의안으로 제출하여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결의안 제출 및 연설을 하기에 앞서 원주민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어떠한 내용을 포함시킬지 상담을 한 러드 총리는 우선 왜 사과가 필요한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설명을 하고 있다.

 

Nanna Nungala Fejo shared sorrow and joy with PM

http://www.smh.com.au/news/national/nanna-nungala-fejo-shared-sorrow-and-joy-with-pm/2008/02/13/1202760398977.html

 

우선 나나 페조(Nanna Fejo)라는 한 원주민 여성의 경험담을 얘기하면서 그녀가 상식적으로 얼마나 부당한 처우를 받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역사책에서나 나올 옛날 얘기로 치부될 수 있는 사안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러드 총리는 또한 사과 반대 의견을 반박하는 논리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이 사안을 역사가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피해자들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intellectual curiosities)이 아니라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인간(human beings)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과거 일에 대해 현세대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 일이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관련 법을 제정한 의회에 책임이 있으며, 선조가 누린 축복을 물려받은 자손으로서 그들의 짐도 물려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래도 사과의 필요성에 납득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만약 자기 자신이 그런 일을 겪었으면 어땠을 지를 상상해보라는 말을 남긴다.

 

피해자들을 향해서도 책임 및 사과의 주체가 호주 총리, 정부, 의회임을 분명히 하면서 이 날의 사과가 피해자들의 아픔을 없앨 수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연설은 피해자들에게 정중히 용서를 구하는 동시에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이같은 일이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호주 정부의 사과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우선 우리에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의 대조일 것이다. 실제 이는 국내 한 신문의 사설에도 나오고 있다.

 

호주 정부가 시인하고 사과한 원주민 탄압 만행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21401033137043002

 

일본 정부가 수 차례에 걸쳐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사과"를 해왔지만 피해자나 피해국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솔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도 일본인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참고할 점이 있는 것 같다.

 

먼저, 피해자 개인의 사례를 들면서 인간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다. 러드 총리가 사과 연설에서 나나 페조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부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군대성노예,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적인 사연을 들어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일본인들에게 자기 자신이나 자기 부모, 자식, 동생에게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떠한 심정일지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다 과거의 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직 가해자, 피해자가 살아있고, 일본 정부의 공식 정책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강제노동의 경우 당시 수혜를 입은 일본 정부 및 기업들이 이제 와서 과거의 책임에 눈감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호주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기까지는 원주민 단체, 인권운동가, 국제사회의 운동이 있었다. 특히 소설, 영화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진상이 알려진 것은 여론을 돌리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백인기관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긴 여정을 걸었던 원주민 아이의 실화를 다룬 책 Follow the Rabbit-Proof Fence (1996년)과 이를 영화화한 Rabbit-Proof Fence (2002년)를 꼽을 수 있다.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알리는 데도 쉰들러 리스트 등이 중요했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도 군대성노예, 731부대 생체실험 등의 역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예술 작품들이 더 나와야 한다.

 

그러나 호주의 사례로부터 정말 배워야 할 데는 바로 일본이다.

 

먼저 사과를 할 것이면 제대로 해야 한다.

 

조건을 달지 말아라. 아베가 그랬듯이 "협의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식의 궤변은 사과의 효과를 증발시킨다(애를 낚아채서 유괴하면 강제성이 있는 것이고 사탕 주겠다며 꼬셔서 유괴하면 강제성이 없다는 건가? 이런 소리를 하니 국제사회의 냉소를 받는 것이다).

 

러드 총리에 이어 나온 야당 지도자인 자유당의 당수 브렌든 넬슨의 연설은 역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를 구했음에도 대부분의 사례들이 "선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펴서 피해자들의 비난을 받았다(사실 넬슨 당수는 애초부터 사과 결의안에 반대하다가 당내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일자 막판에 입장을 바꿨다).

 

넬슨 연설:

http://www.aph.gov.au/house/Nelson_speech.pdf

 

"Our responsibility, every one of us, is to understand what happened here, why it happened and the impact it had on not only those who were removed but also those who did the removing and supported it. Our generation does not own these actions, nor should it feel guilt for what was done in many, but certainly not all, cases with the best of intentions. But in saying we are sorry, and deeply so, we remind ourselves that each generation lives in ignorance of the long-term consequences of its decisions and actions. Even when motivated by inherent humanity and decency to reach out to the dispossessed in extreme adversity, our actions can have unintended outcomes. As such, many decent Australians are hurt by accusations of theft in relation to their good intentions. (강조 첨가)"

 

 

사실 이 문제는 "도둑맞은 세대"와 관련한 핵심쟁점이다. 원주민 아동의 백인 가정이나 시설 편입은 원주민 아동이 고아이거나 원주민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였을 경우에도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결정은 당국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자 수를 추산하기는 힘들다.

 

이를 근거로 몇몇 보수적 인사들은 실제로 원주민 부모로부터 부당하게 강탈당한 아동은 극히 일부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전임 하워드 총리는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여러 피해자들의 증언과 원주민들을 백인 사회에 편입시켜 씨를 말리는 것이 정책의 목표임을 밝힌 담당 관리들의 기록은 이러한 정책이 정부 차원에서 원주민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자행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명확해진 것은 호주 인권 및 평등기회 위원회가 1995년부터 1997년까지의 조사를 거쳐 낸 보고서 덕분이다. 이는 권위있는 공식 전문기관에 의한 사실관계의 확인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실 일본 정부도 1990년대 초 여론이 들끓자 조사를 하긴 하고 관련자료를 공개하긴 하였다. 그러나 피해자의 증언은 반영시키지 않은 채 "객관적 사료" 즉 공식문서만을 조사대상으로 하였고 그마저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방위청 자료 중 상당부분과 경찰, 노동성, 후생성 자료를 비공개로 분류하였다(『政府調査「従軍慰安婦」関係資料集成』(全5巻、龍溪書舎出版)). 조사도 추후에 계속하겠다고 해놓고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 역시 같은 시기에 정부 대책반을 세워 조사 보고서를 내면서 조사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해놓고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정신대문제실무대책반,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일본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역사문제 등에 있어서 중앙정부보다도 더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1995년 당시 사회당의 무라야마 총리가 전쟁사죄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보수우익 세력들은 26개 현의회(일본의 43현 중 60% 초과), 90개 시촌 의회에서 전몰자 추도감사 결의를 채택하였다(아시아 여성기금이라는 최악수르 둔 사회당은 여기서도 손 놓고 당하였다).

 

호주의 각주 정부들이 연방정부에 앞서 사과를 하고 피해자 배상에 나서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이게 일본의 암울한 현실이다).

 

한편, 러드 총리의 연설을 일관하는 논지는 결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과를 함으로써 호주가 덜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호주 의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사과 결의의 다음 문장은 이를 잘 나타낸다.

 

"The time has now come for the nation to turn a new page in Australia’s history by righting the wrongs of the past and so moving forward with confidence to the future. ... For the future we take heart; resolving that this new page in the history of our great continent can now be written."

 

 

물론 러드 총리도 지적하였듯이 공식 사과는 원주민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일 뿐이다.

 

러드 총리는 이 날 연설에서 구체적으로 일반인들과의 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도입할 것을 약속하였다. 반면 러드 총리는 원주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배상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보수 진영에서 사과에 반대한 것도 뒤이어 나올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 때문이었다).

 

위에서 봤듯이 호주 법원은 이미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으며, 이번 공식 사과를 계기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 소송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송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높은 피해 입증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피해자 배상기금 마련이 주장되고 있으며, 태즈매니아 주는 실제로 이를 이행하고 있다.

 

Tasmania to compensate Aboriginal 'stolen generation'

http://www.guardian.co.uk/world/2008/jan/22/australia.barbaramcmahon

 

일본의 경우, 보수적인 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배상을 위한 기금 설립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물론 아시아 여성기금과 같이 사업주체를 모호하게 하는 정부 책임회피용 배상기금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슷한 배상 제도가 캐나다의 원주민 피해자를 대상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Indian Residential Schools Resolution Canada

http://www.irsr-rqpi.gc.ca/english/index.html

 

앞으로 호주 정부가 어떠한 피해자 구제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사진 1: Nanna Fejo 사진(위 Sydney Morning Herald 기사).

 

사진 2: Bruce Trevorrow 사진(위 The Age 기사).

by ethan | 2008/02/18 22:55 | Human Right & Wrong | 트랙백 | 덧글(1)

Tom Lantos 1928-2008

지난 11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톰 랜토스 의원이 식도암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0세.

 

Representative Tom Lantos Dies at 80

http://www.nytimes.com/aponline/us/AP-Obit-Lantos.html?scp=2&sq=lantos&st=nyt

 

Tom Lantos, 80, Is Dead; Longtime Congressman

http://www.nytimes.com/2008/02/12/washington/12lantos.html?scp=2&sq=tom+lantos&st=nyt

 

 

우리에게 랜토스 의원은 작년 7월 30일 미국 하원의 군대성노예 결의안(Resolution 121) 만장일치 채택을 주도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Chairman Lantos in support of "Comfort Women"

http://www.youtube.com/watch?v=2mNIF_J0XVk&eurl=http://support121.org/?page_id=46

 

Remarks of Chairman Lantos on H. Res. 121, regarding Comfort Women, at committee markup (Verbatim, as delivered)

http://foreignaffairs.house.gov/press_display.asp?id=380

 

 

랜토스 의원은 미국의 유일한 홀로코스트 생존자 출신 연방의원이다. 그의 가족이 살던 헝가리는 2차 대전 중 나치 통치 하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헝가리는 동유럽에서 가장 일찍 유대인들에게 동등한 법적 권리가 부여된 지역으로 때문에 많은 헝가리 출신 유대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전후 수립된 이스라엘의 법조계에서도 헝가리 유대인들은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랜토스 의원의 가족들도 모친을 포함하여 이때 희생되었고 랜토스 의원 자신도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다가 2차례나 탈출하였다. 부다페스트로 도망온 그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중립국이었던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이 발행했던 "보호 여권"과 스웨덴 외교 공관을 가장한 피난처 제공 덕분이었다. 수 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후 무일푼의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랜토스는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하면서 국제문제에 관한 티비 해설가로 자주 나왔고 현재 상원 외교관계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이든 의원 등의 자문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81년부터 연방 하원의원으로 재직하기 시작한 그는 미국 의회에 진출한 전무후무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인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취임 직후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 외교관 발렌베리를 미국의 명예시민으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서 멈추었다면 랜토스 의원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84년 의회 인권 코커스(Congressional Human Rights Caucus)를 만들고 다른 인권사안에 대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그는 1980년대에 이미 중국의 티벳 통치에 따른 인권유린을 적극 지적하여 중국의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이 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비난하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동료 의원들과 워싱턴의 수단 대사관 앞에서 다르푸르 학살 중지를 요구하는 항의시위르 벌이다가 일시 체포되기도 하였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된 이후, 하원 외교관계 위원회 위원장이 된 그는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 이외에도 1차 대전 중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 결의안을 미국의 주요 우방인 터키와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에서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작년 11월에는 중국 정부의 반체제 인사 탄압에 정보제공 등의 협조를 한 야후 간부들을 상대로 청문회에서 "당신들은 기술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거인이나, 도덕적으로는 피그미들이다(While technologically and financially you are giants, morally you are pygmies)"고 통렬히 비판하기도 하였다.

 

북한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온 그는 그러면서도 대북 대화를 지지해왔다. 작년 초 힐 차관보의 북미간 접근이 네오콘의 비판을 받았을 때도 랜토스 의원은 지지 의사를 표명하면서 무게를 실어주었고 올해 초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이 개방정책을 펴도록 직접 설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물론 랜토스 의원의 일대기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 유대계 정치인인 랜토스 의원은 이스라엘의 이익이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절대로 양보하는 일이 없었고 중동, 테러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라크 전쟁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인권 침해로 지탄을 받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애국법(US Patriot Act), 관타나모 수용소의 옹호자였던 랜토스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많은 반발을 샀다(특히 그의 지역구인 샌프란시스코는 미국내에서 게이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가장 진보적인 동네이기 때문에 그가 암진단을 받기 전에 이미 다른 민주당 정치인이 14선 의원인 그에게 도전장을 낸 상태였다).

 

독설로도 유명한 그는 한 연설에서 퇴임 후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로비스트로 고용된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를 "정치적 매춘부(political prostitute)"라 불러 청중들을 경악시키기도 하였다. 랜토스 의원은 그러한 표현이 진짜 매춘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US Lawmaker's "Prostitute" Remarks Provokes Germany

http://www.dw-world.de/dw/article/0,2144,2607360,00.html

 

 

이러한 모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랜토스 의원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다. 무일푼의 난민으로 미국에 건너와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까지 올랐으니 대단한 인물이다. 위의 일본군 성노예 결의안 지지 연설에서도 들을 수 있듯이 그의 영어는 강한 헝가리식 액센트가 남아있다(영어 발음 잘 되게 한다고 멀쩡한 애들 혀 수술까지 받게 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랜토스 의원이 대단한 것은 그러한 입지전적인 개인사 때문만은 아니다. 미 의회의 전무후무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그는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유대인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왔다.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갖은 인권유린을 겪었다. 35년간 계속된 일제의 무단통치, 전쟁 중의 강제징용, 군대성노예, 생체실험, 광복 후 독재정권 하의 각종 인권유린, 지금도 계속되는 김일성-김정일 정권에 의한 인간지옥.. 이러한 인권유린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가해자들의 책임을 물으며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입은 피해만으로 생각을 국한시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수십 만 명이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우리나라 기업들이 제3세계에서 노동착취를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왜 문제제기가 없는 것일까? 군대성노예의 아픔을 기억하는 우리나라가 우간다, 콩고 내전 등에서의 여성 노예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제, 독재권력의 인권유린을 경험한 우리가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나?

 

만약 스웨덴 사람인 발렌베리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그는 유대인 절멸계획의 책임자 아이히만과 현지 나치잔당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전후 혼란기에 그를 미국 스파이로 의심한 스탈린의 지시로 소련군에 의해 끌려가 "실종"되었다) 헝가리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랜토스는 그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랜토스 의원이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보편적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력적으로 활동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것일까?

 

물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의원, 그것도 외교관계위원회장까지 지냈으니까 그러한 활동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개봉된 찰리 윌슨의 전쟁(Charlie Wilsoln's War)에서 볼 수 있듯이 일개 하원의원이 궁극적으로 구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을 종식시킨 아프간 반군 지원 정책을 추진한 것은 확실히 미국이 아니었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이는 단순히 미국의 국력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정치체제에서 하원의원은 예산권 등에 있어서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그러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반드시 돈, 무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거물 국회의원이 수단 대사관 앞에서 다르푸르 제노사이드를 규탄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여 전국민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한국의 대통령이나 외통부 장관이 버마의 민주화 시위대를 지지하는 발언을 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나? 그게 지나치다 싶으면 버마 문제에 관한 아시아 지도자들의 긴급회의를 제안하여 공동대응방안을 조율하는 것은 시도해볼만하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행위에 따라 우리가 입게 될 불이익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버마, 수단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은 당장 짐 싸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도 감수하는 리스크이다. 우리만 아무런 위험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제 리더십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 일에 관심이 없는데 세상이 왜 우리 일에 관심을 보이겠는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만 해도 한국의 피해자들만이 일본 정부라는 공룡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려 했다면 지금까지의 이슈화가 가능했을까? 다른 나라들의 여성 피해자, 인권 및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는 세계 각지의 양식있는 인사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군대성노예 문제는 그야말로 일본 정부가 원하는대로 완전히 잊혀졌을 것이다.

 

그러한 인사 중의 한 명이 랜토스 의원이고 또 한 명이 지난 11월에 작고한 랜토스 위원장의 전임자인 하이드 의원이다(공화당 소속의 하이드 의원은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로 2006년 군대성노예 결의안이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통과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당시 결의안은 공화당 지도부의 반대로 본회의에서는 상정되지 않았다).

 

Henry J. Hyde, a Power in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Dies at 83

http://www.nytimes.com/2007/11/30/washington/30hyde.html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세계 10대 경제대국,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의 나라이면 그에 걸맞는 국제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랜토스 의원과 같이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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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han | 2008/02/18 22:5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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